* 9년전에 써놨던 글을 발굴해서 업로드. 9년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난 참 열정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젖 먹던 힘’을 짜내 본 적이 몇 번 되지 않았던 것 같고, 남들이 다 죽을 것처럼 노력하던 고3시절이나 취업준비생 시절에도 그냥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연봉인상을 위해, 승진을 위해, 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을 위해 할짓 못할짓 다 하면서 살아가는 치열하고도 치열한 직장생활 속에서도 나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여유를 부리면서 살아왔다. 물론 그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아 항상 야근과 조기출근, 휴일근무에 시달리던 나날들이었지만, 야근을 할지언정 내 사정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다소 나태한 마인드가 신입사원 초기의 얼마간을 제외하고서는 항상 몸에 배여 있었다. 그리고 뭐 따지고 보면 내가 빵구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열정 그런 거 없이도 다 잘 해왔고 잘 살아왔다. 다만 ‘더’ 잘 살 수는 없었던 것일 뿐.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온 방식은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인 ‘담백함’과 참 닮았다. 어쩌면 내가 담백함을 좋아하는 것과 내 인생이 닮은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담백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난 참 한국사람답지 않게 매운 맛, 신 맛 이런 극단적인 맛보다는 담백함이 참 좋다. 말이 좋아 담백함이지, 한국사람들 식으로 표현하자면 ‘싱거움’에 가까운 맛이다. 이도 저도 아닌 맛, 딱 집어서 특징이 없는 맛, 밍숭맹숭한 맛이고 이걸 사람한테 갖다 붙이면 썩 칭찬처럼 들리지는 않을 그런 단어이다. 어떤 면에서는 ‘회색분자’란 표현하고도 닮아 보인다. 새빨간 사람도, 새파란 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회색. 따지고 보면 담백함이란 표현은 어쩌면 온갖 허접하고 부실한 특징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난 ‘담백함’이 좋고 담백한 사람이 좋다.
그래도 ‘담백한 사람’이라고 하면 뭔가 깊이가 있어 보이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사실 담백함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오랜 시간 끓여낸 사골국물, 은근히 우려낸 멸치국물, 자극적인 소금간 없이도 식감을 돋우는 그런 맛. 혀를 내두르게 하는 그런 맛은 아닐지라도, 식탁을 떠나면서 생각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다시 한 번 생각나는 그런 맛.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론 열정적인 사람, 굉장히 멋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소리를 질러가며 야근에 철야에 맡은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완수하고 성대한 축하자리에서 비싼 양주를 들이킬 수 있는 사람, 열 명 중 여덟아홉명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런 사람. 나도 한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부러워 보였고 그런 사람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별로 나이도 지긋하게 먹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나는 담백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묵묵히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면서, 남들은 잘 모르거나 심지어 ‘뭐 이런걸?’하고 무시할만한 나만의 여가활동을 즐기며, 크게 기뻐하지 않고 크게 슬퍼하지 않는 삶. 언젠가부터 그런 삶이 ‘이상적인 내 삶’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나는 그런 삶을 위해 얼마 전부터 방향을 바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새로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으리으리한 관광지보다는 그냥 동네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게 좋고, 어제 나온 최신 음반보다는 오래되고 사람들도 잘 모르는 괴상한 음악들이 좋다. 굳이 1등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남들에게 크게 주목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좋은 집과 좋은 차가 탐나지도 않고(물론 누가 공짜로 준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전도유망한 능력과 만인이 우러러보는 높은 직책도 별 관심이 없다. 어찌 보면 누가 봐도 평범한 소시민의 삶, 전형적인 꿈 없는 루저의 인생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잘해 봐야 육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일 인생(성경에 나오는 표현인데 요즘은 이것보단 더 오래 산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 스스로도 참 영감님 같다고는 생각하지만, 정말 그렇다. 일희일비하면서 죽을 둥 살 둥 사는 것보다는 담백하게 사는 게 훨씬 편안하게 사는 방법 아닐까.